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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

평온함
누구나 복잡한 세상사에서 평온을 찾고 싶어 한다. 평온은 대부분에 사람들에게 욕심일 것이다. 그래서 정신과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나는 신앙공부를 해오면서 묵상, 기도 이런 심신의 평화를 찾기 위한 많은 방법들을 경험했다. 현실에 적용이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생각보다 아는 것을 행하기란 쉽지 않다. 피할 수 없는 것들, 선택해야 하는 것들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평온함을 찾기 위한 여정마저도 쉽지가 않구나.

병원
다시 병원에 갔다. 이번에는 부모님과 동생까지 대동해서 갔다. 가는 길 자체가 참 창피스러운 길이였다. 개인 상담을 받고 가족 상담도 따로 했다. 스트레스 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육체적인 문제까지 진행이 되었다는 말이다. 부모님에게는 입원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러고나니 본가 가족들이 나를 대하는게 달라졌다.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건강만 되찾으라고 한다. 나도 변하고 싶다. 절실하게.

가족
지금 내 가족은 아내와 아가이다. 본가 가족들이 있지만 내가 책임져야 하는 가족은 따로 있다. 이렇게 된 상황에서 양가 부모님을 차례로 만났다.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은 명백한 사실. 양쪽 다 이제 그만 갈라서기를 바라신다. 다른 이유는 없다 각자 자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막상 이렇게 되니 아들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단란한 가정의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엉엉 울었다.

앞으로
나는 예정된 연구를 쭉 해나갈 것이다. 내 중심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와 같이 병원에 다니기로 했다. 내가 이렇게 된 이상 아내도 온전치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노력이라고 봐야 한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아내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내 안에 크게 있다는 것을 깨닳았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답답한 결혼 생활 중에 아내는 불편한 존재였다. 열심히 가정을 지켜준 것은 알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아내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아내도 마지막으로 변하고 싶다고 한다. 고마울 뿐이다.

자유 그리고

격리 해제
벌써 2주가 지났나? 2주간의 자가 격리가 끝나고 나는 가장 먼저 밖에 밖에 나갔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자유인가? 죄 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집에만 있자니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 자가 격리 기간이 지나고 나니 앞으로 누리게 될 자유에 대한 댓가인가? 책임들이 몰려들어 온다. 이제 정말 현실이구나. 정말 피하고 싶던 현실이다.

육아
지난 3개월 동안 사실 육아에 대한 큰 부담이 없이 지내왔다. 같이 지내는 어머님도 계시고, 아내가 도맡아서 아가를 케어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자가 격리 기간 중에는 아가를 만질 수도 없었다. 격리가 끝나고 어머님은 집으로 가시고, 아내는 지쳤다며 못다한 육아를 다 하라고 한다. 먹이고 재우고 뒷정리하고 집안 일 하고 나면 다시 먹어야 한다. 자다가 시도 때도 없이 깨면 안고 있어야 한다. 아 보통 일이 아니구나, 큰일 났다는 생각 뿐이다.

다시 학교
격리가 끝나고 나니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학교에 가서 인사를 하는 것이다. 갑자기 자가 격리를 더 하고 싶어졌다. 교수님을 뵈야하고 연구실 동료도 봐야하고 그 동안 뭐했는지 왜 그냥 왔는지 이야기를 해야하고 앞으로 뭐 할 것인지 이야기도 해야한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학교에 갔고 아는 사람 만날까 두려운 마음에 어슬렁 거리다가 결국 교수님을 만났다. 잘 지냈니 정도의 의례 하는 인사 좀 하고, 그래서 앞으로 뭐 할꺼냐? 라고 바로 물어보시더라.

그래서
뭐 할꺼냐라는 질문을 듣고 순간 여러 생각이 지나갔다. 기회는 주실만큼 주신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라는 것이다. 연구에 대해서 할 말이 없었다면 아마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진지하게 말씀해주셨을 것이다. 나는 애둘러서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마무리 중이니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말씀드리고 다음 미팅 날짜를 잡고 왔다. 학교는 꼭 나올 필요 없으니 애기보고 논문 마무리 잘 하라고 하신다. 결과가 없으니 숙제만 안고 나왔다.

어슬렁x2
사람들 보기가 쪽팔려서 간단히 인사만 하고 나왔다. 아내한테 어렵게 아가 맡기고 일하러 연구실 나온 것인데 막상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어디가지? 정말 갈 곳이 없네. 다시 어슬렁 거리다가 결국 다시 집에 왔다. 이렇게 해서는 결과를 만들 수가 없다. 아내에게는 낮에는 논문 마무리 지으러 학교에 나가야 된다고 말을 했다. 그렇게 라도 해야 할듯 했다. 아내는 내가 소속이 있다는 것도 있었는지, 육아 안하고 어딜 도망가냐고, 여태 기회 줬으면 됬지 더 이상 내말은 안 믿는다고 화를 낸다. 틀린 말은 없었기에 꾹 참고 들었다. 되는 일이 하나 없네.

알긴 아는데

올게 왔다
아내가 내 방에 왔다. 논문 잘되가냐고 물어본다. 자가 격리 끝나고 아가 50일 촬영도 있고 자기도 이제 좀 쉬고 싶다고 애기 보라는 말이다. 그냥 아무말도 안했다. 대부분에 패턴이 나는 듣고 아내는 말한다. 눈만 껌뻑 껌벅하고 있으니 말하는 아내도 참 괴로울 것이다. 결국 아내는 폭팔한다. 말이란게 끝도 없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냥 영혼을 탈탈 터는 과정이다. 내 인생 전반에 대한 평가를 받는 과정이다.

이해
한참 쏟아내다가 약간 이성을 찾는다. 살다보면 상대 입장을 모르는건 아니니까, 그래서 결국 하는 말은 더 이상 기다려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자기가 떠나면 죽어 버릴 것 같아서 참고 있는데 그것도 이제는 지쳤다고 한다. 마음은 없지만 죽는 꼴을 보기 싫다고. 제발 성공해서 갈라서자는 말이다. 나도 뭐 미련은 없다. 아가가 눈에 밟혀서 그런것 뿐. 이해하는 수준에서 이야기는 마무리 되었다. 나도 아내도 입장은 아니까. 나도 잘하고 싶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말만 반복했다. 언제나 그렇듯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나의 뇌
나는 뭔가 나사가 빠져산다. 기쁘지도 특별히 슬프지도 않다. 그냥 눈뜨면 괴로울 뿐이다. 오늘은 누구에게 어떤 말을 들을까 두렵기만 하다. 왜 그럴까? 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느낌을 받는지 참 오래됬다. 그러니, 누가 나한테 뭐라고 말할까 걱정부터 한다. 학창 시절 따돌림 당하던 친구들이 이런 기분이였을까? 작은 성공을 쌓으며 성장했어야 큰 성공이 가능한데, 지금 나는 작은 성공도 못해본 경험으로 큰 성공 만 쫓고 있다. 이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부활 성야

드라마, 예능
자가 격리가 며칠 안남았다. 아내는 하루 종일 아가를 케어하느라, 장모님은 식사 준비해주시고 그 외에 시간에는 답답한 하루를 보내시느라 고생이 많다. 둘다 하루 종일 드라마, 예능을 하루 종일 다운받아서 본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몸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에게는 중간 중간 카톡으로 집안 일 하라는 오더가 떨어진다. 니가 집에 하는게 뭐가 있냐는 핀잔과 함께. 너는 니 일만 하지 뭐 하는게 있냐고? 맞는 말이다.

성과
가시적인 성과가 없으니 집에서는 하는 일이 없는 놈일 뿐이다. 밖에서도 다를 것은 없다. 인생을 참 비효율적으로 사는 것 같다. 드라마, 예능을 보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취미, 특기도 없다. 어제는 쟁반에 밥을 덜어와서 혼자 방에서 저녁을 먹는 중에 내 자신이 너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했다고 밥을 쳐먹지?

친구 모임
회비도 내고 회장, 부회장도 뽑고 분기 별로 한번 씩은 모이는 친구 모임이 있다. 내가 한국에 온 것도 있고 상반기 모임을 하자고 회장이 채팅방에 며칠 전에 글을 올렸다. 나에게 며칠 며칠에 가능하냐고 물어봤다. 답변하기가 어려웠다. 아. 친구라도 편하지 않구나. 친구들한테 양해구한다고 또 말하고 싶지 않았다. 참다 참다. 새벽에 메시지를 갈겨 썼다. 니네들 편할대로 잡아서 웃고 즐기라고. 가능하면 화상으로 참여하고, 사진이나 올리면 보겠다고. 이해? 기대도 안한다.

원점
연구도 어느 순간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작년 10월 말에 확인했었던 그래프를 다시 보았다. 벌써 몇 개월 전인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좀 힘에 부친다. 꾸역꾸역 하다보면 뭐 정리가 되겠지 싶을 뿐인데 이 마저도 쉽지가 않다. 쉽사리 안풀릴 것 같은데 어떻게하지? 당장 아내 한테는 뭐라고 말을 해야하나? 내 자신에게는 뭐라고 해야 하나?

부활 성야
신실하신 장모님은 부활절 이야기를 하신다. 내일이 부활절이다. 예수 수난을 기억하며 어제 점심은 다 같이 굶기도 했다. 근데 이 상황에 부활절이고 뭐고 나에게 지금 무슨 상관인가? 참 한가로운 소리 같다. 내 목숨이 오늘, 내일인데. 누가 알겠는가? 장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아내도 나에게 일조차 관심이 없다. 집안 일을 했는지? 언제 돈 들어오는지만 관심가질 뿐이다. 마찬가지로 친구들도 모임에 전원 참석하는지만 관심가질 뿐이다. 세상에 예수 부활 보다 급한 것은 널려 있다.


연장

연장
준비하고 있는 학회의 제출 기한이 연장이 되었다. 연장될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코로나19 때문인 것 같다. 결과적으로 2주의 시간을 더 얻었다. 삽질하나에 일주일, 한달을 허비하곤 했는데 지금에 있어서 2주는 느낌이 다르다. 어느정도 정리가 되가는 과정이고 멤버들과 총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오바하자면 2주는 곧 1달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경쟁
시간은 공평하다. 우리에게 2주가 주어진 만큼 남들 또한 2주라는 시간을 얻었다. 목표하는 학회에 낼 팀들은 어느정도 정해져있고 그들 또한 죽어라 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감히 생각건데 풀고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던 간에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흔들리지 말고 앞만 보자.

일정
연장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가장 먼저 나의 앞으로의 스케줄을 확인하였다. 되건 안되건 간에 졸업은 나의 가장 큰 숙원이자 목표이다. 학사 스케줄이란게 있기 때문에 날짜 계산을 잘해서 준비를 해야만 한다. 이번 결과를 가지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결국은 밥벌이를 해야 한다. 박사 초년차에 이런 경험을 했다면 다음 연구란게 흥미진진하게 기다리고 있겠지만, 나는 그런 꿈은 사치와도 같다. 처자식 입에 풀칠하게 해야 하는 태고의 본능만이 기다린다.

아쉬움
박사 초년차에 오늘과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학교에 복귀 했을 때라도 이런 기회가 왔다면 어떠했을까? 아니, 반대로 지금에라도 이런 기회가 와서 천만 다행이다. 이런 기회마저 오지 않았다면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다시는 반등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운이 좋은 놈이다. 집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있다. 사실 잃었던 것은 내 자신 뿐이었다.

지난 기록들
틈틈히 블로그에 일기를 적어오고 있다. 내 감정의 배설창구와 같은 곳이다. 나의 힘들었던 기억들을 잊지말자는 생각도 하며 적는다. 어제는 예전 글을 훑어 보았다. 내용은 읽을 수도 없었다. 제목만 봐도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들이 업습해왔으며, 그때의 나에게 뭐라도 한 마디라도 해주고 싶은 절절한 마음이 들었다. 겸손하게 살자.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

박사

박사 타이틀
박사 학위 받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요즘, 박사 타이틀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전혀 특별하지 않다. 사실, 박사 학위 받은 사람들이 유달리 뛰어난 것도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솔직히 박사라서 다르네라고 말 나올 정도의 박사가 몇이나 될까? 내가 대학원와서 박사들을 보고 정말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 적당히 보내면 받는게 박사가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너무 나갔나?

격변기
분야마다 상황은 다 다르다. 우리 쪽은 지난 10년간 엄청난 질적 성장이 있었던 것 같다. 국내에서도 M 교수님과 같은 뛰어난 박사들이 나왔고, 해외에서 실력있는 박사들이 국내 교수로 대거 임용되었다. 젊은 교수님들은 글로벌 역량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 했고 거기서 태어난 신진 박사들은 이전 박사들과 질적으로 차원이 달랐다. 그런 박사들이 국내외로 진출하고 교수가 되면서 질적 성장의 선순환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 격변기가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태풍의 눈
나는 그 중심에서 양쪽을 다 지켜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사실 적당히 졸업을 했다면 뭐 밥벌이하고 사는데 지장 없었을 것이고, 격변기도 모르고 지났을 것이다. 이런 저런 일로 세상이 바뀌고 나서 돌아와 보니 그 중심에 있게 되었다. 나는 구시대의 유물인데 새 시대를 넘어서야 하다니. 난해한 상황에 갇혀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요즘 박사들에 대해서 새롭게 보게 되었다.

박사는 다르다
최소한 나의 분야에서 최근에 만난 박사 받은 사람들은 나름 다 이유가 있다. 그냥 시간이 흘러서 박사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박사라 다르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반인과 구별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다. 걱정이다. 내가 받는다면 시간이 흘러서 받은 박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나도 무언가 박사라서 다른 이유를 만들어 내야 한다. 독창적인 것을 찾을 필요는 없고 협업하는 박사님들 잘 보고 흉내라도 내야겠다. 범접하기 어려운 분들이라 걱정이다.

논리적인 말하기
내가 아는 박사들은 하나 같이 말을 잘한다. 연구 주제에 대해서 냉철하고 논리적으로 핵심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두루뭉실하게 말하는 법이 없다. 왜에 대해서 충분히 납득할만한 근거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한다. 박사 학위를 만드는 과정에서 훈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타고나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대학 수준의 논의 과정에서 배운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학위 과정
석사, 박사 학위는 지도 교수와 혹은 동료 연구자, 선후배들과 연구라는 테두리 안에서 논쟁하며 성장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 안에서 호되게 깨져가면서 나름의 본능적인 대응 방법을 가지게 된다. 살아오면서 일정 부분 훈련이 되어있는 사람은 조금 더 빨리 본 괴도에 올라갈 수는 있으나 솔직히 석,박사 수준의 토론에서는 기존에 쌓은 것들은 큰 의미는 없다.

토론 피하기
연구에 대해서 스스로 준비가 안되었다고 느낄 때는 다른 사람과 연구 주제로 이야기를 할 때이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과 연구 토론를 안해왔다. 내 스스로 너무 처참하게 깍이는게 싫어서 였다. 마치 권투 선수가 링 밖으로 나가 버린 것과도 같다. 연구를 안하겠다고 선언한 것과도 같다. 이야기할 사람도 딱히 없었지만, 토론하는 매 순간이 상처였다.

토론 해야지
파견와서는 토론을 안할 수가 없었다. 연구를 하기 위해서 미팅이란 것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단독 미팅을 생전 안하다가 하려니 어려웠다.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말하기 훈련이 안되어있는데 내용을 전달 하려니 나의 본 의도 전달하는게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혼자 끙끙 앓다가 시간 허비한 경우가 무척 많다. 물론 지금도 너무 어렵다. 대충 두루 뭉실하게 하는 정도로 될 수준의 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석사, 박사 과정
지난 나의 석사, 박사 과정을 돌이켜볼 때 결정권을 가진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미팅을 해본 경험이 없다. 그게 선배이건 교수님이건간에 나한테 그런 기회가 주어진 적이 없다. 나의 미천한 실력 때문이기도 하고, 줄을 잘 못서있던 것이기도 하고 이유야 불문하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시작 단추부터 꼬이다 보니 십 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충분치 않다. 젊어서 이것도 안배우고 뭐했어 생각부터 들때 처참한 기분이다.

자기 주도
사실 나에게 더 큰 문제는 변화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이 내 인생을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나를 단련하기를 포기하고 그냥 얹혀 살 생각만 했다. 결국 다 팽당하고 나니 벌거숭이로 세상에 던져졌다. 어릴 때는 동생이라고 양해라도 받지, 어느덧 사십 줄이 머지 않은 나이가 되었고 어딜가나 선배, 형, 아저씨라고 불릴 때가 되었다. 피해온 인생에 대한 벌을 받고 있다.

잘했었잖아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소싯적 나의 이야기. 초-중-고 12년 중에 10년을 반장을 했으며 고등학교 전교 회장에 아쉽게 떨어진 경험부터, 시작하여 축구, 노래, 공부, 주먹, 연애, 음주 가무까지 두루 갖추었던 나의 젊은 시절. 그 당시에 나는 학우들에게 인기도 좋았지. 물론 말과 글도 꽤 했고, 무엇보다 앞에 나가서 말하기가 참 쉬웠다. 뭐가 안되면 이빨 털자라고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 겁날게 없는 인생이었다. 그래서 뭐? 그냥 그랬다고, 별 의미 없다. 그저 내 스스로 위로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기에 남기는 것 뿐.

제자리

마지막 보루
내 생각에는 마지막 보루라고 보았던 스킴을 고생해서 구겨 넣어봤는데 멈춰버린다. 멈추고 나니 문제가 있겠구나 생각이 드는 뒷북은 무얼까. 하. 비슷한 코드만 넣다 뺐다 엄청 삽질을 한 것 같다. 75를 찍어야지 생각을 한지가 오래인데 불가능해졌다. 내 수준에서는 도달 불가능한 숫자이다.

차선책
이제 본격적으로 차선책으로 진행을 해야된다. 당연히 바탕화면에까지 해놓았던 나의 꿈과 같은 것은 날라간것이라고 보인다. 하. 별 영양가가 없어 보인다. 열심히 한 것 같긴한데 너무 무지했다. 마지막 복권 긁는 기분으로 바래왔던게 사라지니 허무한 기분마져 든다. 실력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욕심
하나 얻어 걸린 것 가지고 무슨 대통령 당선되는 것 처럼 생각을 해온 것 같다. 하나 가진게 없다보니 이거 하나라도 우겨 넣고 좀 팔아보려고 너무 집착했다. 하늘이여 이번 한번만 도와주소서라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욕심이다. 욕심히 과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인데… 아. 아직도 75 생각만 든다. 75찍어야 되는데…

인공호흡
미팅이 필요하다. 내 수준에서 정리도 안될 뿐더러 과호흡 상태라서 정리가 안된다. 일정대로 절대 진행할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간다.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내가 뭐 위대한 연구자도 아니고 그저 졸업하고 취업 한번 해보자고 하는 것인데 지금 상황을 바로 볼 필요가 있다. 너무 답답하다. 자가 격리 중이라 밖에 나갈 수도 없고.

해결하고파

그리운, 블랙스버그
블랙스버그를 추억하니 참 멀고도 멀다. 눈 앞에 지내오던 모든게 선하고 당장 문열고 나가면 닿을 것 같은데 이리도 멀리 왔다니… (집에서) 나만 조용히 블랙스버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뭐가 그리 그리울까? 돌아와서 느끼는 현실에 대한 압박 때문일까? 결국 도달하는 곳은 인생에 대한 후회. 이룬 것 없이 흘러 버린 내 인생의 안타까움.

여전히 진행중
블랙스버그에서 들고 있던 문제는 여전히 한국에서도 싸메고 있다. 여전히 풀리지 않았고 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내 인생의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지금 쯤에 해결 될 줄 기대했는데 이렇게 되니 논문에 방향과 결과 모든게 의미 없어 보인다. 괴롭다. 짜증이나서 미쳐버릴 것 같다.

해결 방법
해결 방법이 있을까 궁금하다. 얕은 나의 지적 깊이로 도달이 불가능하다는게 미칠 것 같다. 문제는 명확한 것 같고 이래 저래하면 될 것 같은데? 더도 말고 25만 처리해주면 넘버가 나올텐데. 분명 나보다 조금 뛰어난 사람이 계속 붙잡고 했으면 끝냈을 것이다. 못끝낼 수가 없다. 이건 되는 문제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문제 해결 능력
요즘에는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기 위한 수업이 참 많다. 공학적 사고라고 말들을 하던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작은 문제부터 풀어내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진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말 나는 지독하게 훈련이 안되있다. 부모님, 왜 나를 이렇게 키우셨나? 선생님, 왜 나를 가르치지 않으셨나? 타박하면 끝도 없다. 모든 악조건에 맞물리다 보니 내가 나왔다. 더럽게 재수가 없다.

컴백홈

7개월
2박3일 격리 시설에서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집에 왔다. 격리해야 되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내 집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다르다. 아내가 떠나기전부터 아가 용품을 잔뜩 사놓아서 원래도 작은 집이 정말 비좁아졌다. 짐 정리를 하고, 옷방에 작업 공간을 만들어 놓고 이제 자리에 앉았다. 막상 앉으니 7개월이 허무하게도 순삭된 기분이다. 적응해야 된다.

작업 환경
작업 환경은 좌식인 것 빼고는 미국 연구실에서 구성과 동일하다. 여러모로 최대한 익숙한 환경에서 작업하는 것이 연속성에 있어서 좋다. 역시 인터넷 속도에 있어서는 비교할게 못된다. 그 동안 작업 서버는 한국에 있어서 고생을 했었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히 우위에 있다. 나머지는 나의 집중력에 달려있다. 즐거운 마무리를 한번 도전해 보자.

걱정 반, 기대 반
파견에서 마지막 2달은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구현과 실험의 기록들을 돌아보니 나름 숨막히게 했던 것 같다. 돌아오기 전에 어느정도 답을 보길 바랐으나 생각보다 좋은 답을 못찾은 것 같다. 원큐에 모든게 해결되리라 기대했는데 지금 수준은 문제 확인하고 가능한 옵션을 제시한 것 같다. 최적의 답이 분명히 있을 텐데 없다면 없어야 하는 이유라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걱정이 반이요 기대도 반이다.

까페 임대
부모님 집 1층에 까페가 들어오기로 했다고 한다. 약간 특색이 있는 까페인데 나름 괜찮을 것도 같다. 파견 3-4개월 즈음인가? 다 포기하고 한국가서 1층에 까페나 차리겠다고 나름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물건너가버린 옵션이다. 이제 남은 옵션은 하나 뿐이다. 하던 연구 마무리하는 것. 다행히 나는 혼자가 아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격리소 2박 3일
아내는 미국에서의 생활이 불안하고 고된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격리 시설에서 나름 편했다고 한다. 나는 거의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작은 방에 온 가족에 케리어를 다 쟁여두고 언제 나갈수 있을까 고민하는 가운데 미쳐버릴 것 같았다. 작은 소리 별 의미없는 전화 목소리에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니 죄지으면 안될 것 같다. 책임감 없이 소모하던 자유인의 삶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