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인 말하기
내가 아는 박사들은 하나 같이 말을 잘한다. 연구 주제에 대해서 냉철하고 논리적으로 핵심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두루뭉실하게 말하는 법이 없다. 왜에 대해서 충분히 납득할만한 근거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한다. 박사 학위를 만드는 과정에서 훈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타고나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대학 수준의 논의 과정에서 배운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학위 과정
석사, 박사 학위는 지도 교수와 혹은 동료 연구자, 선후배들과 연구라는 테두리 안에서 논쟁하며 성장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 안에서 호되게 깨져가면서 나름의 본능적인 대응 방법을 가지게 된다. 살아오면서 일정 부분 훈련이 되어있는 사람은 조금 더 빨리 본 괴도에 올라갈 수는 있으나 솔직히 석,박사 수준의 토론에서는 기존에 쌓은 것들은 큰 의미는 없다.

토론 피하기
연구에 대해서 스스로 준비가 안되었다고 느낄 때는 다른 사람과 연구 주제로 이야기를 할 때이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과 연구 토론를 안해왔다. 내 스스로 너무 처참하게 깍이는게 싫어서 였다. 마치 권투 선수가 링 밖으로 나가 버린 것과도 같다. 연구를 안하겠다고 선언한 것과도 같다. 이야기할 사람도 딱히 없었지만, 토론하는 매 순간이 상처였다.

토론 해야지
파견와서는 토론을 안할 수가 없었다. 연구를 하기 위해서 미팅이란 것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단독 미팅을 생전 안하다가 하려니 어려웠다.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말하기 훈련이 안되어있는데 내용을 전달 하려니 나의 본 의도 전달하는게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혼자 끙끙 앓다가 시간 허비한 경우가 무척 많다. 물론 지금도 너무 어렵다. 대충 두루 뭉실하게 하는 정도로 될 수준의 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석사, 박사 과정
지난 나의 석사, 박사 과정을 돌이켜볼 때 결정권을 가진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미팅을 해본 경험이 없다. 그게 선배이건 교수님이건간에 나한테 그런 기회가 주어진 적이 없다. 나의 미천한 실력 때문이기도 하고, 줄을 잘 못서있던 것이기도 하고 이유야 불문하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시작 단추부터 꼬이다 보니 십 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충분치 않다. 젊어서 이것도 안배우고 뭐했어 생각부터 들때 처참한 기분이다.

자기 주도
사실 나에게 더 큰 문제는 변화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이 내 인생을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나를 단련하기를 포기하고 그냥 얹혀 살 생각만 했다. 결국 다 팽당하고 나니 벌거숭이로 세상에 던져졌다. 어릴 때는 동생이라고 양해라도 받지, 어느덧 사십 줄이 머지 않은 나이가 되었고 어딜가나 선배, 형, 아저씨라고 불릴 때가 되었다. 피해온 인생에 대한 벌을 받고 있다.

잘했었잖아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소싯적 나의 이야기. 초-중-고 12년 중에 10년을 반장을 했으며 고등학교 전교 회장에 아쉽게 떨어진 경험부터, 시작하여 축구, 노래, 공부, 주먹, 연애, 음주 가무까지 두루 갖추었던 나의 젊은 시절. 그 당시에 나는 학우들에게 인기도 좋았지. 물론 말과 글도 꽤 했고, 무엇보다 앞에 나가서 말하기가 참 쉬웠다. 뭐가 안되면 이빨 털자라고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 겁날게 없는 인생이었다. 그래서 뭐? 그냥 그랬다고, 별 의미 없다. 그저 내 스스로 위로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기에 남기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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